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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카프릭&부슷다 똥 싸고 나오는 길이었다. 수영장 옆에 늘어서 있던 파라솔 아래에 제법 무대를 갖춰놓고 쿵짝거리는 친구들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종이 박스를 뜯어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직접 찾아왔다"라고 흘겨 갈겨놓았다. 바구니엔 홍보 스티카를 나눠주고 있었다. 급호기심이 발동해 그만 눌러앉아 구경했다. 근처 무대에선 언니네가 리허설 중이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지처있었던 탓이었을까 나이가 든 탓이었을까. 3일 동안 접한 공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공연이었다. 푸른 잔디가 덮힌 슬로프 위로 초승달이 걸려 있었고 풀에선 때를 잊은 언니들이 쿵짝 장단에 맞춰 마구 폴짝거리고 있었던 거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허참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직접 찾아왔다"니.. 남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대.. 2009. 8. 1.
misha - 그래 오늘 가는거지? 지브 타워 흡연자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옥상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샤는 물었다. 공기는 여전히 축축했고 그는 강한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 응, 오늘 밤에. - 어때, 지내긴 괜찮았어? - 더 이상 좋을 순 없을거야. 사람, 음식, 해변, 음악, 날씨 모두 최고였어. 참한 아가씨 하나 꼬셔서 장가가서 여기서 살까봐. - 후훗. 움푹 패인 눈두덩이가 웃음으로 주름진다. - 이봐, 이런 얘기가 있어. 한 남자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간거야. 너 지옥갈래 천당갈래 묻는거지. 사내는 감히 구경하길 요구했고 웬일로 염라대왕이 흔쾌히 승락해. 먼저 찾아간 천당에서 사람들은 모여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 다음에 찾아간 지옥에선 아름다운 남녀가 서로 얽혀 술과 맛난 음.. 2009. 7. 10.
미하일 우즈벡 식당에서 거나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 건 새벽 1시 쯤이었다. 미하일은 부인이 신신당부하며 부탁한 우즈벡식 탄두리 만두 박스를 그의 포드 뒷좌석에 모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 운전해도 괜찮겠어? - 안전벨트나 매. 식당에서 내내 농담이나 따먹으며 흥청망청하던 노인은 어디에도 없고 눈은 이미 진지하게 변해있다. 가벼운 식사로 얘기를 나눌 때의 그 빨강코 할아버지와 오피스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지모드는 전혀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대시 보드 앞에 앉아 있는 이 백발의 노인은 어느샌가 오피스의 카리스마 모드로 돌변해 있다. - 이봐, 넌 여기서 뭐하는거야? - 뭐, 뭐라구? - 이런 시골에서 썩을 놈이 아니야 넌. 너만 유일하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거 알아? 더 큰 물로 가. - 농담.. 2009. 7. 6.
또 다른 전직 대통령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이 한 마디 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여 들어봅시다. 원문 링크 존경하는 선배 동료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6.15와 10.4 선언, 이것을 생각할 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 대통령과 저만이 북한을 가서 정상회담을 한 그 사건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과 제가 이상하게 닮은 점이 많습니다. 둘 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고, 노 대통령은 부산상고, 나는 목포상고를 나왔습니다(웃음). 노무현 대통령은 돈이 없어 대학에 못 가고 나도 돈이 없어 대학 못 갔습니다(웃음). 노 대통령은 대학 못간 뒤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됐고, 나는 열심히 사업해서 돈 좀 벌었습니다(웃음).. 2009. 6. 14.
. 백양 나무가 무거운 하늘 아래에서 살랑거리는 것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는데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촌, 노무현이 죽었데요. 누.. 누구요? 노무현이요. 노무현. 관심 없어요. 저 바빠요. 전화 끊어요. 친구의 고급 SUV의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고 진록의 백양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하나 물었다. 형, 자살이래요. 산에서 뛰어내렸다네요. 그래. 가는 비가 흩날리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진록의 백양 나무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났다. 저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적당히 타협하고 니는 뒤로 빠져라. 부모가 자식들에게 이런 부끄러운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역사를 제가 바꾸겠습니다.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멸문지화를 당해야 했던 역사.. 2009. 5. 23.
대청소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할머니들 변소를 정리한다. 털무덤인 이불 빨래를 한다. 구석구석을 빤다. 화장실 물때를 제거한다. 겨울 옷을 박스에 넣고 여름 옷을 꺼낸다. 입지 않는 옷을 처분한다. 헌 옷 수거인을 호출한다. 설겆이를 하려는데 헌 옷 수거인이 띵똥한다. 꽤나 말쑥한 중년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을 보고 반가운 척을 한다. - 아이구 이쁜 고양이들이네. 윗층에서 나무가 빼꼼한다. - 미용도 이쁘게 해주셨네요. 미용은 미용사가.. - 어 기타 치세요? 물어보지도 않고 기타를 잡는다. 주르르릉 - 튜닝도 잘 해 놓으셨네요. 튜닝은 튜너가.. 소파에 앉더니만 제법 그럴 듯하게 스콜피온즈를 때린다. - 저 옆 동네에서 라이브 카페합니다. 놀러오세요. 명함을 하나 내민다. 털이 덕지덕지 묻은 헌 옷을 주섬주섬.. 2009. 5. 15.
getting older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데 있어 필요한 요점을 꿰뚫고 있달까.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능청스럽지도 않아 뭔가 도가 느껴졌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기회를 포착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인간의 군상 속에서 여러 번 속아보고 깨달은 노련미가 흘렀다. 간만의 모습에서 의외의 면을 발견하고 놀라서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웃고 즐기는 사이 이 친구는 이렇게나 자랐구나.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성공의 비결이렸다. 내 마음은 쉽게 살 수 있는데 왜 아무도 안 사려는 걸까?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겠지. 문득 재주가 너무 많은 나머지 많은 적을 두고 궁지에 몰린 공자에게 던져진 노자의 일갈이 떠올랐다. "대개.. 2009. 5. 13.
phaedrus 나아감보다 멈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걸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내 브레이크는 벌써 예전에 고장이 났거나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도 않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일진데, 내게 여행이란 순간은 가청 주파수 너머의 노이즈와 다름이 없구나. 늙은 엔진의 극심한 소음이 귀를 괴롭히고 거친 노면의 충격이 손목에 피로를 가중시키는 그 길 위에서, 줄곧 머리 속에선 햇살이 수만개로 쪼개지는 수면 위에서 매끈하게 진동하는 완벽한 접영의 세부 동작을 그렸다. 목적도, 순간도, 남은 것도 없는 삶. 또 언제쯤 88번 국도를 잊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6시간의 7000rpm, 거센 바람의 자동자 전용 도로를 견뎌준 老馬, phaedrus가 대견할 뿐. 그저 虛하다. 2009. 5. 6.
swan dive 기억도 가물가물한 조막손 시절.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보폭에 맞추려 성큼성큼 걸어야 했던 거친 콘크리트 길의 줄무니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에. 구멍이 송글송글한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생각하곤 했었다. 규칙적인 무늬가 반복되는 이 보도에서 뛰어내리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한동안 맘을 설레고, 때문에 주저해가며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한가히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었다. 그러다 아파트 단지 입구로 푸른 파꼭지가 삐져나온 비밀 봉투를 들고 들어서는 엄마를 보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곤 그녀 품으로 달려가는거다. 그 이후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는 나이가 될때까지도 이탈에의 동경 속에 살고 있다. 현실의 언저리에 위태하게 올라서서는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는거다. 그.. 2009. 4. 24.
. 새파랗게 거들먹거리는 공무원 양반이 아니꼬왔던 게다. 그치들에게 굽신거리는 나의 상관이 못마땅했다. 태만과 부정과 무책임이 피같은 국민의 세금을 갉아 먹고 있는 걸 벌건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를 하곤 울화가 치밀어 청사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게다. 피같은 지구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험비와 토리노들이 난무하는 영화에 신을 내고 혼미한 음악에 취해 엉덩이를 흔들다가 맥주를 마시곤 반감을 삭였다. 감정은 순간이며 이성의 기억은 지속적이려니.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기억하고, 개선을 위한 고민을 하고 때가 되면 증언하고 싸워야 뜨거운 남자일진데. 그녀의 붉은 매니큐어가 무거운 공기 속에 남기곤 하던 나선의 흔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서. 현실이 무엇인 것인지 투쟁은 또 어디에 있는 것인지. 촛불이 어디서 사.. 2009.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