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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swan dive

by erggie 2009. 4. 24.
기억도 가물가물한 조막손 시절.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보폭에 맞추려 성큼성큼 걸어야 했던 거친 콘크리트 길의 줄무니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에.
구멍이 송글송글한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생각하곤 했었다.
규칙적인 무늬가 반복되는 이 보도에서 뛰어내리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한동안 맘을 설레고, 때문에 주저해가며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한가히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었다.
그러다 아파트 단지 입구로 푸른 파꼭지가 삐져나온 비밀 봉투를 들고 들어서는 엄마를 보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곤 그녀 품으로 달려가는거다.

그 이후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는 나이가 될때까지도 이탈에의 동경 속에 살고 있다.
현실의 언저리에 위태하게 올라서서는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는거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봉투를 든 엄마처럼 방아쇠랄까 뇌관이랄까 뭐 그런 비슷한 걸 끌러주면 폭주해버리는 것인데.
그 폭주의 끝은 기껏해야 보도에서 조금 내려선 예의 그 거친 콘크리트 바닥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새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또 턱을 올라서서는 뻔한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걸 반복한다.

뭔가 진정한 폭주라던가 추락 같은 것을 나는 경험한 적이 있는가.
하며 또 다른 동경 속에 빠져버리는 것인데.
이런 동경 속에 사는 이 삭까야가 정말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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