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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대청소

by erggie 2009. 5. 15.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할머니들 변소를 정리한다.
털무덤인 이불 빨래를 한다.
구석구석을 빤다.
화장실 물때를 제거한다.
겨울 옷을 박스에 넣고 여름 옷을 꺼낸다.
입지 않는 옷을 처분한다.
헌 옷 수거인을 호출한다.
설겆이를 하려는데 헌 옷 수거인이 띵똥한다.
꽤나 말쑥한 중년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을 보고 반가운 척을 한다.
- 아이구 이쁜 고양이들이네.
윗층에서 나무가 빼꼼한다.
- 미용도 이쁘게 해주셨네요.
미용은 미용사가..
- 어 기타 치세요?
물어보지도 않고 기타를 잡는다.
주르르릉
- 튜닝도 잘 해 놓으셨네요.
튜닝은 튜너가..
소파에 앉더니만 제법 그럴 듯하게 스콜피온즈를 때린다.
- 저 옆 동네에서 라이브 카페합니다. 놀러오세요.
명함을 하나 내민다.
털이 덕지덕지 묻은 헌 옷을 주섬주섬 챙겨 나간다.
- 재밌게 사시네요.

담배 하나 물고 앉아 생각해 본다.
뭐지.
재밌게 사시네요.
실은 참 재미 없다.
더럽게 재미 없다.
비도 오고.
황석영이란 작자는 버스를 바꿔 탔다.
오래 전 쓴 찬양글을 좀 읽다 우스워져서 영원히 지워버렸다.

지하철을 탔다.
폴리시 닷 스커트를 입은 소녀는 작은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브라키닥틸리증의 소녀가 금융 공학 텍스트북을 읽고 있었다.
스커트의 소녀는 검은 호스에 붉은 캔버스를 신고 있었다.
브라키닥틸리는 노트에 알 수 없는 피겨들을 외워적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높이 자란 퍼런 풀들이 빗물이 어린 창밖에서 달리고 있었다.
참 변하지 않는 것은 없구나.
적당히 변하고 살았구나.

산다는 것에 의무감을 부여하지 않기로 해요.
그렇게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다.

나무군은 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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