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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85

tel aviv .텔 아비브다. 두 번째라고 제법 편안하다. 3일 동안 머나먼 타지에서까지 밤늦게 일하고 돈이 아까워 맥도날드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시는 찌질이 과장님을 보필하다가 과장님이 귀국한 이후부터는 푹 퍼져버려서 그야말로 이국의 정취에 흠씬 젖어버렸다. 잘생긴 미카엘(사무실엔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만 넷이다)이 추천해준 펍을 찾아 나섰다가 한 시간 동안 좁은 골목을 헤맸다. 이국의 정취는 골목에서 가장 진하게 풍기는 법이다. 울퉁불퉁한 벽돌 바닥과 정돈되지 않은 보도의 마감부터 흥미롭다.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전쟁 영화에서나 보았던 유럽의 뒷골목의 어두침침한 조명 사이로 여인들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느린 걸음을 걷는다.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여인들의 옷차림.. 2009. 9. 11.
one thing and another .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일하다가 쓰러졌다. 침대카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난생 처음 구급차를 타봤다. 한밤의 응급실은 재난 상황을 방불케 할 만큼 붐볐다. 싸움질로 얼굴이 엉망이 된 교복, 자전거에 처박은 아이, 이유없이 보채는 젖먹이들. 내 몸 역시 과로로 망신창이가 된 상태라 대기실에 앉아 눈을 좀 붙이려고 했으나 쉴새없이 울어대는 기저귀받이들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침침한 눈으로 4시간 동안 원숭이 섬의 비밀을 플레이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사람이 쓰러졌는데 마음이 너무 차분하고 냉정해서 놀랄 정도다. 강해진건지 감정이 메마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고 있다. 이 회사가 대단한 것은 배가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가게 한다는 것이다. 배.. 2009. 8. 30.
날좆타 꿈에서 마르셀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 잠에서 깼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샤또우의 창틀에 다리를 올리고 거기를 쑤시는 마르셀과 시몬의 장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장면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간결하게 사랑한다고 해준다. 뭐 그건 그렇고. 바이크 타고 출퇴근하기 딱 좋은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수영장에서 가볍게 땀을 빼주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로 스로틀을 당길 때의 기분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길거리엔 교복이 넘치는게 벌써 방학이 끝났나보다. 2009. 8. 6.
misha - 그래 오늘 가는거지? 지브 타워 흡연자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옥상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며 미샤는 물었다. 공기는 여전히 축축했고 그는 강한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 응, 오늘 밤에. - 어때, 지내긴 괜찮았어? - 더 이상 좋을 순 없을거야. 사람, 음식, 해변, 음악, 날씨 모두 최고였어. 참한 아가씨 하나 꼬셔서 장가가서 여기서 살까봐. - 후훗. 움푹 패인 눈두덩이가 웃음으로 주름진다. - 이봐, 이런 얘기가 있어. 한 남자가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간거야. 너 지옥갈래 천당갈래 묻는거지. 사내는 감히 구경하길 요구했고 웬일로 염라대왕이 흔쾌히 승락해. 먼저 찾아간 천당에서 사람들은 모여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 다음에 찾아간 지옥에선 아름다운 남녀가 서로 얽혀 술과 맛난 음.. 2009. 7. 10.
미하일 우즈벡 식당에서 거나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 건 새벽 1시 쯤이었다. 미하일은 부인이 신신당부하며 부탁한 우즈벡식 탄두리 만두 박스를 그의 포드 뒷좌석에 모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 운전해도 괜찮겠어? - 안전벨트나 매. 식당에서 내내 농담이나 따먹으며 흥청망청하던 노인은 어디에도 없고 눈은 이미 진지하게 변해있다. 가벼운 식사로 얘기를 나눌 때의 그 빨강코 할아버지와 오피스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진지모드는 전혀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대시 보드 앞에 앉아 있는 이 백발의 노인은 어느샌가 오피스의 카리스마 모드로 돌변해 있다. - 이봐, 넌 여기서 뭐하는거야? - 뭐, 뭐라구? - 이런 시골에서 썩을 놈이 아니야 넌. 너만 유일하게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거 알아? 더 큰 물로 가. - 농담.. 2009. 7. 6.
. 백양 나무가 무거운 하늘 아래에서 살랑거리는 것을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는데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삼촌, 노무현이 죽었데요. 누.. 누구요? 노무현이요. 노무현. 관심 없어요. 저 바빠요. 전화 끊어요. 친구의 고급 SUV의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고 진록의 백양 나뭇잎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하나 물었다. 형, 자살이래요. 산에서 뛰어내렸다네요. 그래. 가는 비가 흩날리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진록의 백양 나무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언젠가 그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났다. 저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적당히 타협하고 니는 뒤로 빠져라. 부모가 자식들에게 이런 부끄러운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역사를 제가 바꾸겠습니다. 권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진실을 말하면 멸문지화를 당해야 했던 역사.. 2009. 5. 23.
대청소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 할머니들 변소를 정리한다. 털무덤인 이불 빨래를 한다. 구석구석을 빤다. 화장실 물때를 제거한다. 겨울 옷을 박스에 넣고 여름 옷을 꺼낸다. 입지 않는 옷을 처분한다. 헌 옷 수거인을 호출한다. 설겆이를 하려는데 헌 옷 수거인이 띵똥한다. 꽤나 말쑥한 중년이 등장한다. 할머니들을 보고 반가운 척을 한다. - 아이구 이쁜 고양이들이네. 윗층에서 나무가 빼꼼한다. - 미용도 이쁘게 해주셨네요. 미용은 미용사가.. - 어 기타 치세요? 물어보지도 않고 기타를 잡는다. 주르르릉 - 튜닝도 잘 해 놓으셨네요. 튜닝은 튜너가.. 소파에 앉더니만 제법 그럴 듯하게 스콜피온즈를 때린다. - 저 옆 동네에서 라이브 카페합니다. 놀러오세요. 명함을 하나 내민다. 털이 덕지덕지 묻은 헌 옷을 주섬주섬.. 2009. 5. 15.
getting older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어리숙하고 착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어느새 부쩍 자라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데 있어 필요한 요점을 꿰뚫고 있달까.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능청스럽지도 않아 뭔가 도가 느껴졌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기회를 포착하고 달려들고 있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인간의 군상 속에서 여러 번 속아보고 깨달은 노련미가 흘렀다. 간만의 모습에서 의외의 면을 발견하고 놀라서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웃고 즐기는 사이 이 친구는 이렇게나 자랐구나.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라. 성공의 비결이렸다. 내 마음은 쉽게 살 수 있는데 왜 아무도 안 사려는 걸까?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겠지. 문득 재주가 너무 많은 나머지 많은 적을 두고 궁지에 몰린 공자에게 던져진 노자의 일갈이 떠올랐다. "대개.. 2009. 5. 13.
phaedrus 나아감보다 멈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걸 알 것만 같다. 하지만 내 브레이크는 벌써 예전에 고장이 났거나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도 않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일진데, 내게 여행이란 순간은 가청 주파수 너머의 노이즈와 다름이 없구나. 늙은 엔진의 극심한 소음이 귀를 괴롭히고 거친 노면의 충격이 손목에 피로를 가중시키는 그 길 위에서, 줄곧 머리 속에선 햇살이 수만개로 쪼개지는 수면 위에서 매끈하게 진동하는 완벽한 접영의 세부 동작을 그렸다. 목적도, 순간도, 남은 것도 없는 삶. 또 언제쯤 88번 국도를 잊을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6시간의 7000rpm, 거센 바람의 자동자 전용 도로를 견뎌준 老馬, phaedrus가 대견할 뿐. 그저 虛하다. 2009. 5. 6.
swan dive 기억도 가물가물한 조막손 시절.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녀의 보폭에 맞추려 성큼성큼 걸어야 했던 거친 콘크리트 길의 줄무니만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에. 구멍이 송글송글한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생각하곤 했었다. 규칙적인 무늬가 반복되는 이 보도에서 뛰어내리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한동안 맘을 설레고, 때문에 주저해가며 보도의 턱에 쪼그려 앉아 한가히 오가는 차들을 바라보았었다. 그러다 아파트 단지 입구로 푸른 파꼭지가 삐져나온 비밀 봉투를 들고 들어서는 엄마를 보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곤 그녀 품으로 달려가는거다. 그 이후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는 나이가 될때까지도 이탈에의 동경 속에 살고 있다. 현실의 언저리에 위태하게 올라서서는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는거다. 그.. 2009.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