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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한강

by erggie 2008. 8. 11.

한강을 건넜다.


토요일 저녁에 마지막으로 가볍게 연습하러 갔더니 센터 사람들이 레인 세개 잡고 15일 대회 준비를 하고 있더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꼽사리 껴서 가볍게 같이 돌아준다. 오리발은 이번에 차봤는데 이거 나름 매력있다. 가볍게 2키로만 돌고 센터에 보관하던 수영복, 물안경, 렌즈 등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에 전화가 온다. 술 마시잔 전화다. 꾹 참고 계속 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준비물들을 챙기는데 이런, 렌즈가 안 보인다. 이리저리 뒤져도 없는데 센터도 쉬는 날이라 센터에 두고 왔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어디 살 수 있는 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일찍 나가봤는데 아주대, 강남, 잠실, 어디 상가를 뒤져도 다 문을 안 열었더라.


렌즈 때문에 돌아다니느라 행사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땀 벅벅이드라. 리스트 밴드를 받고 슈트를 지급 받는다. 슈트 준다길래 흔히 수영 강사들이 입는 고급 슈트를 생각했었는데 조끼형의 상의더라. 하긴 너네가 그렇지. 탈의실은 그냥 텐트인데 완전 찜통이다. 살이 쪄서 Large 사이즈 슈트가 배에 걸린다.


출발 장소에 도착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아저씨 사진 찍어주는 아줌마, 단체 사진 찍는 아저씨 셀카 찍는 아저씨. 이유없이 기분이 우울해졌다. 왜 사진 따위를 찍는 것일까. 어색한 v와 어색한 웃음. 행복할까 궁금해지더라. 


시간이 되어 나란히 줄서서 앉아 있으려니 안내요원이 전방에 함성까지 지르란다. 목소리들 우렁치시기도 하시지. 첫조가 출발하자 군악대가 팡파레까지 울려준다. 가지가지 하시는군. 출발하자마자 포기자가 발생해 되돌아 온다.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인파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용기란 보통 베짱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혼자 차갑게 박수를 쳐준다. 이런 더러운 물에 몸을 더럽히기엔 고귀한 영혼인게다.


난 막구른 영혼이기에 나름 철저한 준비를 한다. 렌즈가 없기 때문에 물안경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낭패다. 평소보다 띠를 조이고 재차 확인 후 입수. 수질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맨날 지나다니면서 본 그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던 나의 무식한 용기란 참. 도중에 물결이 심하게 쳐서 물을 좀 먹었는데 기절할 뻔 했다. 상큼시원한 휘발류맛. 정신 차리는데 한참 걸렸지 뭐냐. 기름값이 비싸다더만 한강에다 향료로 쓰고 있었구만.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시야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렌즈도 문제인데다가 헤드업 스위밍을 제대로 연습하지 않아서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처음엔 방향을 제대로 못 잡을까봐 부표 근처에서 내질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꾸 치인다. 짜증나서 오른쪽으로 빠져 질렀는데(물이 왼쪽 방향으로 흘러서 부표는 왼쪽에만 있더라) 가다보니 50미터는 족히 넘게 경로를 이탈했더군. 보트에서 라잎 가드들이 호루라기 불고 난리를 친다. 허겁지겁 다시 돌아간다고 가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역주행을 하고 있더라. 수영장에서 하던 것처럼 속도를 내면 방향이 영 어긋나고 머리 좀 꺼내서 저으면 속도가 안 나고..


입안에 휘발류 향을 가득 머금고 갈지자로(물론 추측) 허둥대는데 수면 위로 인생에 의미가 물음표를 달고 뽀글뽀글 솟아 올랐다. 시발 도대체 난 왜 여기 와 있는지 알 수가 없는거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어디서 오긴 온 건지. 순간 고질적인 니힐리즘이 솟구쳐 올라 자살 충동이 일었다. 듣기론 한강의 수심은 2m가 넘지 못하는데 이런 물에 고의적으로 빠져 죽기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 자살까지 귀찮다.


어메 부표라고 달아놓은 풍선은 유치해 죽겠구나. 커헉, 라잎 가드 아저씨들 몸매 죽이네. 쩝쩝, 이 물은 무슨 색이라 해야할까. 아하 국방색. 흐미, 하늘은 노랗구나. 제길, 비가 오면 좋겠구만. 맥주가 시원하면 마시고 말아야지. 아하 내가 미쳐 돌아가는구나. 내일 신문에 실려야지. 한강 도영 중 실성자 발생. 우리 엄니 좋아라 하실까. 이메가는 정부의 부주의를 사과할 것인가. 아하 진짜 미쳐 돌아가는구나.


그래 이 미친 놈이 간신히 건너편에 닿아 침을 뱉고 있으려니 자원 봉사 학생들이 쭈뼛쭈뼛 어색하게 달려와 메달을 걸어준다. 시발 너네는 서비스 정신도 없냐. 죽을 고생을 하고 왔는데 사랑한단 말과 함께 뜨거운 키스라도 해줘야 순수한 자원 봉사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않겠네. 입안의 휘발류향도 좀 느껴봐야 안쓰겄나. 너네같이 안일한 한량들이 나라를 말아먹는거다. 아아 언덕으로 올라간 정신은 언제 돌아오려나.


여전히 미친 채로 터벅터벅 익은 아스팔트를 걸어 나가니 길가에 수영 풀 같은 걸 갖다 놓고 물을 담아 바가지로 몸을 헹구라 한다. 가볍게 헹구고 나갔더니 웬걸 샤워시설이라곤 그게 다란다. 허겁지겁 제대로 씻으러 왔더니 벌써 오링이다. 찝찝한 상태로 옷을 갈아입고(또 텐트 안에서 땀범벅이 됐다) 셔틀 타고 잠실로 돌아온다. 얌전히 바나나하고 우유 받아 먹고 택시 타고 귀가.


집에서 젖은 짐을 푸는데 메달이 툭하고 떨어진다. 자랑스런 우리 시장님 이름을 떡하니 박으셨네. 존함이 오세발이셨군요. 내가 이딴 거 때문에 그 고생을 했던가 싶다. 벽에다 걸어놓고 놀러온 객에게 자랑 한 마디 하려고 그 고생을 한겐가. 출발하기 전 사람들이 그렇게 사진 찍느라 호들갑이었던 이유를 조금 알 듯도 싶다. 의미 희박한 그 행위에 억지로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거다. 그게 인간인거다. 억지로 산을 찾고 오르고 사진을 찍고 또 산을 찾고. 내일은 또 어떤 산을 오를 것인가.


거 참 별 볼 일 없는 인생 아닌가. 삼십대 초반,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생각하는게다. 뭐 하나 이뤄논 것도, 이룰 수 있을 만한 저력 또한 변변치가 않다. 난리 법석의 호들갑 국민들과 다를 것 하나 없는 속물 아니던가.


행위의 좋은 동기가 되는 콤플렉스를 거부하지 않으련다. 허풍과 구라로 호들갑을 떨고, 탐하고, 해할테다. 타락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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