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바른 척의 사나이인게다. 진정한 남자인게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이쁘고 잘 빠진 연예인에 목을 매다는 짓은 용서가 안되는 일이었던 게다. 실제로 얼핏 '오호 괜찮은데'하는 느낌이 드는 배우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가볍게 무시를 해주시고는 '내 타입이 아냐'하고 멋있는 척을 해주는거다. 허허, 멋있는 척이라니. 결국은 '내 타입'란 없었던 게다.
그러고 샤를리즈 테른이 있었다. 전쟁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몰아 보게 된 그 많던 전쟁 영화 중에 '헤즈 온 더 클라우즈'가 있었고, 난데없이 튀어나온 붉은 입술과 요상하게 꼰 블론드에 숨이 막혀버리고 말았던게다. '아냐 아냐 남자는 혹해선 안돼'란 생각이 미처 끼기도 전에 숨을 틀어 막아 버리더군. 이 난데없는 아가씨는 '말레나'의 플롯을 짜깁기한 듯한 그저 그런 이야기를 그러니까 '압도'해버리고 있었다. 지금도 이야기의 줄거리 따윈 머리 속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그녀가 나왔던 장면마다 희미하게 떨리던 묘한 긴장감만이 근육 사이 사이에 남아 있아 있는 것만 같다. 개념이 아닌 느낌으로서 남자의 가슴에 어필하는 여인의 멋이라는 것이 무엇인 줄 알았다고나 할까.
뭐 여느 때처럼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엔 깨끗이 잊어 버리고 예의 '바른' 나로 돌아온 건 두 말 하면 잔소리다. 그 뒤에 '몬스터'와 '노스컨트리', '데블즈 애드보킷'을 보았는데 그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지만 언제나 난 '바른' 나로 돌아와 거기 서 있었다. 배우 따위에 목을 매는 건 남자가 아니잖아.
그나 저나 회사 니나노 무리들끼리 시간이나 때우러 '핸콕'을 보러 갔다. 유리 언니가 오래 전부터 '원티드' 노래를 불렀었지만 네티즌 평점이 좋다는 핑계를 대고 '핸콕'을 우긴게다. 샤를리즈에 대한 기대를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허허, 근데 말이지. 샤를리즈가 처음 등장할 때의 충격이란... 벌어진 입을 막으며 다른 배우이길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모르겠다. 이건 뭐 분장 없이 몬스터에 출연시켜도 될 정도지 않나. 게다가 이놈의 영화란 건 또.. 망가진 테른 때문에 영화 전체에 대한 평가를 절하하는 게 아닐까하는 핑계를 댈 어림 반 푼어치의 여유도 허용치 않는다. 얼마 후 '원티드'를 보고 나오며 '굿 잡! 굿 잡!'을 연발한 이유도 다 이 핸콕 때문인게다.
헌데 영화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어제 갑자기 그녀의 얼굴에 자글거리던 주름이 생각이 난다. 괜시리 가슴이 답답하다. 상해버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교적 초기 출연작인 'The Cider House Rules"를 감상한다. 존 어빙이란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고 하네. 테른의 상대역은 스파이더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그 친구로 테른보다 키가 '작다'. 소설이 원작이라 그런지 웬지 이야기 전개에 급해 세밀한 묘사가 부족하단 느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빙이란 작가는 책 두께로 승부하는 타입이라고 하네.
뭐 이야기야 어찌됐건 오늘의 주인공인 테른은 비교적 만족이었다. 우연인지 테른의 이미지가 원래 그런건지 테른은 역시 전쟁의 비극에 상처입은 여인으로 분한다. 붉은 입술에 꼰 금발. 도발적 웃음과 색기.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놈놈놈의 이병헌 식스팩 자랑씬에 버금갈 만한 테른의 완벽 몸매 자랑 씬이란 서비스까지. 좋네. 그렇게 이야기의 큰 길 옆에 난 작은 길로 새고는 흐뭇해 한다.
그러다가 테른이 이야기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시 영화가 본래의 큰 길로 달리기 시작할 때 담배를 하나 꼬나 물어야만 했다. 키 작은 스파이더맨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테른을 따라 길을 나섰다가 테른을 경험하고, 이겨내고 '무브 온'한다. 그러니깐 '무브 온'
이쯤되면 어떤 얘기가 나올 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뻔한 플롯이니까, 그치?
그러니깐, 그 어느 것도 이겨내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자신 생각이 난 게다. 그 어디에도 뛰어들지 못하고 자빠져 앉아 이쁜이 나오는 영화 따위나 보고 침을 흘리고 있는 자신이 못마땅해 진거다. 난 언제쯤 이 뻔한 플롯을 이겨낼 수 있을까? 척할 필요가 없는 남자가 될 수 있을까?
금요일 새벽, 'ひっくりかえってた2人'를 벗삼아 무의미한 공간에 무의미한 이야기 하나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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