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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death of a feeble kitty

by erggie 2008. 7. 11.

출근길에 횡단 보도를 건너려고 서 있는데 건너편에서 한 중년 남자가 발로 뭔가를 툭툭 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생후 한 달이 되었을까 싶은 새끼 고양이였다. 털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녀석이 자꾸 도로로 나가려고 해서 귀찮은 듯 발로 도로쪽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쁘지 않은 새끼 고양이가 어디 있으랴. 아직 다리에 힘도 없는 듯 비틀비틀 남자의 발과 장난을 치는 녀석을 보며 가볍게 웃어주었다. 그런데 남자가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 녀석이 도로로 뛰어들어 택시 바퀴 밑으로 숨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택시는 신호가 바껴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소리를 질렀고 택시 기사는 귀찮다는 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차들을 막아서며 도로로 뛰어들었는데 이게 웬걸 이미 녀석은 다른 차선으로 넘어가 달리던 차에 치어 솜같은 털을 세우고 파닥거리고 있었다.


달리던 차로 냅다 뛴다. 사거리 한 가운데에 차를 막아 세우고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던 운전자의 면상에다 주먹을 한 방 날린다.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 창으로 손을 넣어 차문을 열고 끌어낸다. 바닥에 쓰러진 그의 면상에 주먹을 연거푸 날리고 머리채를 잡아 머리통을 바닥에다 짓이겨버린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아 시동이 꺼지지 않은 차를 운전해 피로 흥건한 머리를 바퀴에 깔아버린다.


...


이건 뭐 버스 안에서 혼자 생각해 낸 미친 시나리오다.


정작 허겁지겁 달려가 선 발 앞엔 머리를 치어 눈알이 튀어나온 채 파닥거리고 있는 녀석만 남겨진 채였다. 친 차는 이미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고 건너편에서 발로 길을 막아주던 중년도 사라지고 없다. 차마 녀석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바닥에 뿌려진 분홍빛 피와 차가 사라진 횡한 거리만 번갈아 바라보며 벌렁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몇 분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키라고 클락션을 빵빵거리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녀석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는다. 용기를 내 조심조심 솜처럼 가벼운 몸을 감싸 안고 길가 화단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짧은 묘생 동안 젖은 제대로 먹었니, 엄마는 어디 계시니, 멍청히 혼잣물음을 하다가 부디 더 이쁜 자궁 안으로 다시 들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가던 출근길을 재촉했다.


긴 한숨으로 답답한 가슴을 달래며 하늘을 본다. 구름이 참 예쁘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느낄 정도였는데 막상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 앞에 초연하기란 쉽지가 않구나. 부서진 턱 사이로 하악하악거리며 마지막 생을 부여잡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고 부주의한 운전자들에 대한 분노 역시 삭여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매일같이 처자식을 위해 졸린 채로 일터로 달려야 하는 부주의한 가장을 탓할 것인가, 귀찮기만 한 고양이 새끼가 도로로 뛰어드는 걸 막지 못하고 한 눈을 판 중년을 탓할 것인가, 자동차를 탄생시킨 무자비한 물질 문명을 탓할 것인가, 복잡한 세상에 생을 준 어미 고양이를 탓할 것인가, 불완전한 세상을 창조한 무성의한 신을 욕할 것인가.


인간의 인식 능력 밖에 있는 것들은 종교니 뭐니 그런 편에 맡기고 가던 길을 가는 게 맞는게다. 왜 죽어야 하냐면 아무 중놈이나 잡아들고 답해주라 하고 가던 길을 가는거다. 엿 같은 세상을 한 놈이 만들었든 여러 놈이 나눠 만들었든 그래 그런가부다 하고 냅두는 게 낫다. 죽어서 천당이나 지옥을 간다느니 억겁의 세월 동안 다를 자궁을 갈아타길 반복한다느니, 그래 그런가부다 하고 냅두고 가던 길을 가는 게 맞는거다. 인생의 고뇌가 뒷덜미를 잡고 가는 길을 막아서면 종교라는 권위가 주장하는 아무 답지나 내밀어 주고는 돌아서라도 가던 길을 가는 것이 낫다.


고양이 교통사고 예방 캠페인이나, 안전 운전 캠페인, 자동차 반대 운동에 평생을 바칠 게 아니라면 앞으로 나아가자. 더 예쁜 엄마 아빠 만나 또 다른 생을 맞이할거란 선택지에 체크를 하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가던 길을 가자. 녀석이 짧은 생을 바쳐 내게 던져 준 고마운 교훈 한 점 베어물고 뻣속까지 소화해서는 가슴 한 켠에 묻어두고 가던 길을 가자.


지난 일을 질질 잡아 끌고 허튼 시나리오나 짜는 연약한 자신에게 호통을 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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