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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weekend

by erggie 2008. 9. 2.

주변의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또래의 아가씨들과 수다를 떨었다. 내 발음이 인디언 같다는 말들을 한다. 처음 듣는 말이다. 인디언들과 같이 일하기 때문이라고 서툰 변명을 했다. 순박하고 착실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밝은 표정들 뒤에 숨은 어두운 기운들에서 그런 사람에게 가혹해져만 가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연습을 하기 위해 홍대에 갔다. 연습은 안 하고 겜만 했다. 장애인 테란으로 언니의 저그에 완패했다. 언니에게 간략하게나마 수영 강습을 해주기로 했는데 녀석은 수영복도 준비 안 해놓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내 수영복을 입어보곤 온라인으로 단돈 3만원짜리 5종 세트를 구입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숨이 터지기까지는 꽤나 고통스러운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한데 끈기를 가지고 잘 견뎌낼 지 의문이다.


루프에서는 회갈색 머리의 아일랜드 소녀들이 하시시를 부르짖고 있었다. 검정 타이즈를 신은 발로 컨크리트 바닥을 폴짝거리는 그녀들의 손가락 끝에선 연기가 하늘거렸다. 그녀들끼리 키스하는 신은 사라졌다고 한다.


딱딱한 의자에 뻗어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언니와 맥주를 마시며 사업에 대해 얘기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은 많은데 신념과 의지가 문제이다.


길바닥에서 꽃다발을 줍는다는 남자 친구를 둔 처자와 시각 디자인과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인 그의 룸메와 여전히 가슴이 남자인 윤반과 언니와 중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짬뽕밥이 매워서 눈물 콧물을 짜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언니의 마파두부덮밥과 바꿔 먹었는데 심심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순대맨이 프라모델 도색용 콤프레샤를 베란다에 설치하고 있었다. 벌이가 신통치 않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비싼 취미를 갖고 있음에 놀란 표정을 지으니 물건은 돈이 아니라 가슴으로 사는 거란 말을 했다. 멋있다. 팔뚝엔 농사 짓다가 생긴 상처가 선명하게 죽죽 그어져 있었다. 귀농을 고려중이라고 하길래 아나키가 아니냐고 물으니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얘기했다. 자유 침해 대상 1호는 욱이라고 말했는데 자신이 공공의 핍박을 받으면 어쩔꺼냔 내 질문에 투쟁하겠노라 했다. 개싸움이잖냐고 빈정거렸다. 어설프게 스콧 니어링 얘기를 했고 역시 귀농을 고려중이라고 얘기했다. 욱이가 헬렌을 어디서 구하겠냐고 묻는다. 신기하게도 스콧의 인생에서 헬렌이 '키'라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아반테를 타고 아코디언을 실으러 가는 욱이와 교회로 가는 난닝구 민영씨, 순대맨, 반바지 언니와 함께 김치찌개와 돼지고기 구이를 먹었다. 착한 맛과 가격에 만족하고 욱이에게 찾아가는 길을 물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시선을 바닥에 묻고 신촌을 거닐다 학교 벤치에서 책을 읽었다. 하늘이 예뻤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비둘기가 가방에 똥을 싸놨고 난데없이 대낮에 빠뿅 모기의 무차별 습격을 당한 상태였다. 소설은 심심했다.


형과 농구 한 겜 하는 동안 조카는 차 안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형수가 월급 기념으로 샤브 샤브를 사주었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배앓이를 해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맛이 없냐고 물어본다. 맛있다고 말한다.


사토 신지에 대한 글을 쓰려고 오래 전부터 마음 먹고 있는데 매번 한 줄만 적고 그만 두고 만다.


구름이 예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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