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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ra

ratm

by erggie 2008. 9. 5.
모니터 만드는 회사 답게 회사 식당 천장엔 대형 모니터가 매달려 있다. 아침 식사 시간엔 직원들에게 글로벌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취지인 듯 CNN 뉴스 방송을 틀어준다. TV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므로 주로 벽을 보고 이어폰에 집중하며 밥을 먹는데 일어나 식판을 들고 나오는 길에 공화당 전당 대회 영상이 눈에 들어와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다. 우리의 전당 대회를 유심히 지켜본 적이 없긴 하지만 소위 우리의 정치적 대회라는 것들의 분위기들과 사뭇 달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카우보이 모자를 흔들고 있는 고집 세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주렁주렁한 훈장을 달고 베레모를 쓰고 있는 역전 용사 어르신, 젊고 또 그래서 아름답고 훈훈한 청년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성조기를 흔들고 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록 얕은 지식과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쪽이 낫지 않을까-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만-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지만 공화당의 전당대회만 하더라도 엄청난 위화감을 주고 있었다. 뭐랄까, 사람들의 눈에는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또는 적어도 무언가라도 '할' 수 있다는 그런 확신 같은 것들과 그런 믿음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가 싸우겠다는 의지가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 눈들은 돈이나 미디어 조작 같은 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전당 대회를 생각하면 할 일 없어 지루한 얼굴로 부채질이나 하고 앉아 있는 할배 할매들이나 어디 돈 되는 게 없나 모여든 양복쟁이들과 아줌마들이 떠오르니 어찌 위화감이 없겠는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정치 평론들과 관련 서적, 그리고 그것들을 너끈히 소화해내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들. 애국 민족주의라는 높으신 이름 앞에 그들의 정책을 무조건 비난하는 건 부끄러운 짓이란 느낌이 든 거다.

그런데, RNC(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던 Xcel 센터 밖에서는 흥미로운 사태가 전개되고 있었나보다. 바로 근처에서 열리고 있던 Ripple Effect 페스티발에서 갑자기 RATM 형아들이 등장, 우리식으로 하면 게릴라 콘서트를 열려고 했다는 거다. 7시까지 합법적인 허가를 받았던 콘서트가 갑자기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다. 흥분한 군중들이 "빡큐! 아 원 두 와츄 텔 미!"를 외쳐댔다. 콘서트장 진입에 실패한 잭 형아는 톰과 팀 형아들을 이끌고 잔디밭으로 유유히 걸어가 무대도 없이 군중들과 같은 높이에서 확성기만을 들고 의미있는 코멘트를 섞어가며 아카펠라로 '불스 온 퍼레이드'와 '킬링 인 더 네임 오브'를 '연주'했다.

와우 와우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치키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치키 치키!

공연이 끝난 직후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군중 3,000은 그대로 Xcel 센터로 난입을 시도하다 최루 가스를 동반한 경찰의 진압으로 해산하였으나 200명 정도는 끝까지 남아 자리를 지켰다고. 허나 메이저 언론에 이런 헤프닝은 코빼기도 안나오고 RATM의 아카펠라만이 유튜브의 필수 시청 클립으로 올랐을 뿐이라고.

몇몇 급진 블로거들은 이번 사건을 보고 1968년의 시카고를 떠올렸다. 로버트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 베트남 전쟁 등 그해의 미국 선거는 어느 해보다 논란이 많았다. 정부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는 청년 국제당(이피)은 시카고에서 벌어진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한다. 시카고 강에 LSD를 뿌려 전 시민들의 야코를 틀어버리고 준수한 청년당원 230명을 풀어 대표단들의 마누라들을 꼬셔버리고 연단에 오른 험프리 후보의 팬티를 벗겨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거다. 시카고 경찰 역시 지지않고 강경 대응을 선언한다. 결국 전당대회가 진행되는 8일동안 미국 역사 초유의 폭력 사태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중계된다. 경찰은 우리의 촛불 진압을 떠올리게 하는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고 '비공식적으로' 약 500명의 시위자가 부상당하고 '공식적으로' 152명의 경관들이 부상당했다.

미국 사상 초유의 폭력 사태의 결과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허버트 험프리는 바로 이웃에서 벌어진 참극을 목격하고 등을 돌린 조용한 표심 덕분에 공화당의 닉슨에게 패배한다. 시위를 지휘한 7명의 지도자들이 구속되었으나 이후 역시 뜨거운 대륙적 논쟁을 일으키며 열린 공개 재판에서 무혐의를 인정받고 '시카고 7'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옆귀로 듣기론 우리 대한국경찰은 이번에 '비공식적으로' 2500 정도를 구속하셨다고. 누군가는 2500인의 행적을 기릴려나 말려나. 뜨겁던 춧불의 열기마저 경찰의 뜻대로 기세가 꺾인 듯 보인다. 나서서 선동하지 못한 처지이긴 하지만 RATM 같은 존재의 부재가 아쉽다. "They are afraid of you"라고 외치는 RATM처럼 전국 수십만의 청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우리의 소위 셀리브리티들은 밥그릇 잃기가 무섭나 보다. 처자식 없는 나도 밥그릇 잃기 무서우니 욕하지는 않으련다. 한 발짝 가시적인 걸음을 내딛기에는 아직 부족해 보이는 우리의 '힘'이나 외부 정황들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흐미.. -_-;
떠들다 보니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뭐니 뭐니해도 오늘의 주제는 정치가 아니라 RATM인데 말이다.
와우 와우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치키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와우 와우 치키 치키 치키!


ps. 고기 궈 먹으려고 바닥에 깐 신문을 무심코 보는데 장장 두 면이 미국 공화당 전당 대회 찬양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뒤집어보니 역시나 조*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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