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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ra

Jailhouse

by erggie 2008. 6. 24.

그 시절 학교 앞엔 스티커 사진 찍는 가게가 있었다.

무심코 길을 걷다가 가게 밖에 걸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귀에 감겨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날 이후로 가게 앞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성거렸드랬다.

하루는 도저히 어깨를 까딱기리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흥겨운 스카 가락이 찍찍거리길래 참지를 못하고는 성질에도 안 맞는 스티커 사진 가게에 어색한 몸뚱아리를 밀어넣고는 점원에게 다짜고짜 제목이 뭐냐 물었다.

마침 시디 케이스를 펄럭거리고 있던 그 점원이라는 사람이 참 물건이었다.

키는 훤칠한 데다 머리는 송골매를 해가지고서는 붉은 별이 그려진 쫄바지를 입고 찡박힌 구두까지 갖춘 락커스런 청년이었던 게다.

정작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내 빈약한 기억이 재현한 그 가게의 풍경 안에서 그가 스티커 머신 옆의 키높은 의자의 발걸이에서 그 긴 다리를 내리고, 선반에 케이스를 내려놓고, 머리를 귀 옆으로 쓸어올리며 일어서는 장면은 싸구려 공포 영화의 싱크율 형편없는 얼굴없는 귀신처럼 조악하고 을씨년스럽다.

눈도, 입도, 귀도 없는 그 점원은 뭐라고 말했던 건 같았는데 난 가게를 잘못 찾아오기라도 한 듯 여전히 찍찍거리는 스카 가락만 머리 속에 담아놓고 황급히 가게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 뒤로도 가게 앞을 지날 때면 가게 안을 힐끔힐끔 처다보곤 했는데 언제나 붉은 긴 의자는 비어 있었고, 몇 달 후엔 고딕 풍의 옷을 즐겨입는 덩치 좋은 여자 아이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직장 3년차의 나른한 오후.

폴리페이직 슬립 스케쥴 시도 8일째로 접어들면서 정신은 좀비스러울데로 좀비스러워서 삼사초 간격으로 수명이 다된 형광등처럼 껌뻑껌뻑거리고 있는데 이어폰에서 그 찍찍찍찍 스카 가락이 흘러나왔다.

그날 가게 안에서 허탕을 친 이후로 머리 속에 남은 가사 몇 구절을 실마리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 못한 그 곡이 우연히 후배가 공유해준 엠피쓰리 속에서 흘러나온 게다.

찍~ 찍~ 찍~ 찍~

한 가락 한 가락마다 신촌의 그 쓰레기더미 내음을, 정신없는 인파들을, 신호를 기다리는 버스를, 그 사이를 곡예하듯 미끄러져가는 씨티백들을 하나씩 하나씩 소환했다가 다시 빛바랜 그 시절로 되돌리길 반복했는데 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번잡한 거리를 걸어볼만한, 날씨까지 참 좋은 날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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