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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ggie 2007. 8. 30.
한동안 무거운 머리를 식혀주었던 대인배 신드롬도 시들해지고 시간을 때울 일이 궁해져서는 이리저리 할 일을 찾아 헤매다가 포기하고 말아서 요즘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려서 택시를 타고 인계동에 있는 시원한 카페에까지 왕림해서 책 읽고, 커피 마시고 조는 일이 잦아졌다. 방은 꽤 시원한 편인데다가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 편이어서 이번 여름도 에어컨이 없이 보내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생각조차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견디다 못해 택시를 타고 시원한 커페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다. 사실 카페 같은데서 책을 읽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꽤나 잘 읽힌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두터운 소설 같은 건 카페에서 읽기 딱 좋은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공지영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와 같은 여류 작가의 감질맛 나는 문장이 쑥쑥 잘 읽힐 것 같지만 오히려 조용한 방보다 조금 어수선한 카페에서 어쩐지 더 집중이 잘 되어서 무겁고 부담스러운 도스토예프시키가 더 잘 읽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집은 이번에 열린 책들에서 새롭게 펴냈는데 책방 구석에 꽂혀 있는 녀석들을 본 순간 풍기는 포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깔끔한 페이퍼 백은 뭉크의 그림으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보는 순간 도저히 사지 않고는 못 베기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왠지 하드 커버보다 페이퍼 백이 훨씬 좋은데 시중에 나와 있는 다른 판들은 대개가 하드 커버이다. 두꺼운 볼륨감을 페이퍼 백으로 느끼면서 책장을 느끼는 게 기분이 썩 좋다. 책 가격 역시 꽤나 착해서 6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가격이 8000원을 넘지 않는다. 역시 페이퍼 백의 힘이다.
책의 디자인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 출간되는 책들은 외장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괜한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밀란 쿤데라의 [느림] 같은 책이나 파울로 코엘료의 [11분] 같은 책이 하드 커버로 나와야 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런 분량의 책들은 손바닥에 탁 접어 놓은 채 읽어야 제 맛이 난다. 괜히 책 가격을 적당한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겉모양에 투자를 한 느낌이 든다. 지하철을 타면 외국인들이 손바닥에 담백한 디자인의 문고판 책을 끼고 읽고 있는 것을 자주 보는데 그럴 때마다 외형보다 실리를 따지는 서양인들의 담백함에 감동을 한다. 영어 책을 몇 권 읽어볼까 하여 콜렉터스 라이브러리에서 출간된 착한 가격의 문고판 책을 몇 권 샀는데 무척 마음에 든다. 물론 거의 장식용이 되어 버렸지만. 이 페이퍼 백이라는 것도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 앞뒤 커버 페이지가 안쪽으로 접히도록 된 것이 아니라 속 페이지 크기에 맞게 깔끔히 잘려 있어서 파지감이 좋다. 이런 책을 손바닥에 끼워 놓고 읽다 보면 중간 부분이 패이는데 이것 또한 보기에 좋다. 종이의 질이 좋지 못했던 옛날이야 나무나 가죽 같은 하드 커버로 내지를 보호해야 책을 오래 보관할 수 있었겠지만 현대의 종이는 페이퍼 백으로 만들어져도 몇 백년은 버틸 정도로 튼튼하지 않은가. 결국 하드 커버는 사치라는 생각인데 이건 덩달아 부풀은 책값 때문에 책을 많이 사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투정이기도 하다.
요즘엔 새로 장만한 전화기가 파일 뷰어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인터넷에서 구한 소설 몇 권을 저장해서 읽고 있는데 이것 또한 꽤나 유용하다. 화장실에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남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잘 읽힌다고는 하지만 식당이나 카페와 같은 공공 장소에서 [악령] 같은 책을 읽고 있으면 왠지 머쓱하기도 하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옆 자리에서 왠 남정네가 혼자 [악령] 같은 걸 읽고 있으면 틀림없이 변태라고 농을 치며 히기덕거릴 거 같다. 핸드폰이나 PDA 같은 걸로 파일을 읽으면 그런 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다가 난데없이 식당에서 비빔밥을 말아 먹으며 간호사의 비밀 같은 소설 같은 것-명작이긴 하다-을 읽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역시 나는 건강한 성의식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것 같다.
하여간 요즘 혼자 있는 시간엔 간편히 전화기를 꺼내 들고 소설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또 이야기를 좀 샛길로 이끌자면 인터넷에서 구한 텍스트들은 오타가 상당히 많은데 전문가들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이 손수 타이핑한 것들인 것 같다. 하긴 이런 일에 전문가나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것도 므흣하긴 하다. 어쨌건 이런 오타들은 심각한 게 아니고 가끔은 예기치 못한 웃음까지 준다. 잡지를 잠지로 쳐넣은 걸보곤 허리가 꺾이고 말았으며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It kills me"를 "야코가 죽고 말았다"로 해석한 덴 정말 야코가 죽고 말았다. 하긴 야코니 뭐니는 오타라기 보다는 번역의 문제인데 내 생에 접한 최고의 번역의 대열에 올려 놓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을 타이핑 하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이런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영화와 미드, 일드 등을 앞다투어 번역하고 싱크까지 맞춰 릴리즈하는 사람들 다음으로 내겐 수수께끼이다.
그나저나 난 도대체 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걸까. 덥긴 더운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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