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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백만년

by erggie 2010. 2. 8.

실로 백만년 만의 포스팅인가.

팀을 옮기고 한 달 정도가 지났는데 백만년이 지난 것만 같다. 살아 온 30여년을 고밀도로 압축해서 그대로 살아버린 것만 같다. 선택의 주체가 모호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고 또 갔다.

사무실.
나와는 마인드 스탠스 자체가 다른 이들과 한 통속이 되어 구르는 것은 산소통 없이 심해에 뛰어드는 느낌이다. 기업 조직이라는 것은 프라핏이라는 모티브 하나를 핵으로 구르는 거대한 눈덩어리 같은 것으로 그 동인에 반하는 기제들은 눈덩어리에 박힌 작은 가지처럼 가차없이 꺾여버리고 만다.
지난 한 달 동안 5번 혼자 밥을 먹었다.
T/F 팀과 한 회식 한 번 외에는 술자리가 전무했다.
커피 타임에도 일, 식사 시간에도 일, 운전 중에도 일 얘기다.

기술, 그 기술에 발맞추는 거대 기업에 소외되는 인간 군상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나름 자위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선의 현장에서 그 피의 참상을 문화 인류학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다는 거창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다섯 페이지 남짓 읽고 잠에 빠지고 말았고 제목만큼 슬프도록 두터운 하드카버는 여전히 책상 위를 나뒹굴고 있다.
지난 달에 시작한 칼 폴라니는 첫 챕터에서 펜딩인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고.

내 작은 방.
고요한 작은 방에 돌 하나가 떨어져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둥근 원들을 그리며 수면을 흔들고 벽들을 들이받아 굴곡하고, 서로 간섭하고 변형을 일으켰다. 끝을 알 수 없는 변화같은 것 앞에선 뒷걸음 치고야 마는 연약한 존재의 자각 외에 한 달 더 소비된 청춘과 리비도가 남았다.

그렇게 다시, 도망쳤다.

세파에 휩쓸릴수록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때문에 뻔뻔스럽게 대담해진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도망칠 수 있다.

별 대신 구름에 싸늘한 바람이 스치운다.
아마 그렇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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