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일어나고 있다.
.결정의 번복과 번복.
결국은 원점으로 되돌아 왔다.
젊은 시절 즐겨 읽곤 하던 은희경의 소설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 달 만에 결혼한 여자 이야기.
바라던 내려놓음의 문턱 앞에서 집착의 대상을 찾으려는 발버둥이 극에 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 앞에 갈대와 같이 흔들린 부끄러운 경험으로 인해 늦깎이 성장을 하는 기분이다.
.회사 후배가 차를 사려고 마음 먹었다.
조금만 있으면 2세를 출산할 그는 좋은 조건에 나온 시보레의 크루즈에 꽂혔다.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결정에 대한 재고를 충고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는 그 차를 살 거면 다시는 집에 오지 마라고 하셨다고 한다.
심지어 부모조차 곧 아기를 출산하는 삼십대 아들의 결정이 철없다 생각하지만 그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
고집일까?
그의 경우에는 단순한 고집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 보면 그의 결정과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다른 이유는 각각의 의사결정 요인에 부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인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당사자만큼 깊게 고민할 사람은 없다.
내게 조목조목 크루즈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를 보고는,
그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견고한 신념.
내게 부족한 미덕인지라 부끄러웠다.
.떠나는 마당에 그 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의 글을 준비하고 있는데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유난히 사람 복이 많았던 나였다.
짧은 글 몇 줄로는 도저히 내 가슴이 표현이 되지 않아서이다.
.감사의 글에 담을 문구들을 생각하다가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경구가 떠올랐다.
그 자체가 지닌 훌륭한 의미 때문에 떠나는 이들이 후일을 기약할 때 많이들 쓰는 표현이지만 불교 경전의 원문을 살펴보면 원래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게 쓰이고 있어 정정이 필요할 듯 하다.
흔히들 법화경에 나오는 게송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으로 그 유래는 대반열반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마하야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국내 불교학자들에 의해 곡해된 것으로 보인다.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 Sutta)은 데라바다 불교의 대표 경전인 디카 니카야의 34개 니카야 중 16번째 니카야인데
붓다가 열반 3개월 전 죽음을 예고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목격한 아난다가 서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가 주는 문학적 가치 때문에 불교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니카야이다.
붓다가 죽기 3개월 전 열반에 들 것을 예고하자 슬퍼하는 아난다에게 전한 원문은 아래와 같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참으로 내가 전에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그러니 여기서 [그대가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그런 것을 두고 '절대 부서지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아난다여, 그대는 오랜 세월 동안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몸의 업과,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말의 업과,이롭고 행복하고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는 자애로운 마음의 업으로 여래를 시봉하였다. 아난다여, 그대는 참으로 공덕을 지었다. 정진에 몰두하여라. 그대는 곧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될 것이다."
"Enough, Ananda! Do not grieve, do not lament! For have I not taught from the very beginning that with all that is dear and beloved there must be change, separation, and severance? Of that which is born, come into being, compounded, and subject to decay, how can one say: 'May it not come to dissolution!'? There can be no such state of things. Now for a long time, Ananda, you have served the Tathagata with loving-kindness in deed, word, and thought, graciously, pleasantly, with a whole heart and beyond measure. Great good have you gathered, Ananda! Now you should put forth energy, and soon you too will be free from the ta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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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의 원문에는 정작 헤어지면 다시 만난다는 얘기는 언급조차 없지만,
불교의 근본 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명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고, 태어나면 죽는다.
영원한 삶은 없다.
슬퍼하지 말고 방일하지 말지어다.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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