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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Lily allen과 재범

by erggie 2009. 9. 20.

.Lily allen
Lily allen에 대한 포스팅을 몇 번 했었고 twitter follow도 하고 있다. 아니 했었다.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분명 음악 하나면 보아야 할 것이지만 어쩔 수 없이 아티스트의 환경이나 그 캐릭터를 형성하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도 들여다 보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훌륭한 요리를 평가할 때 단순한 맛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재료라던가 가공의 과정을 고려하고 어떤 요리사가 어떻게 요리했나를 들여다 보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까. 스카 리듬을 좋아하는 나로서 고전적인 스카 리듬을 완전히 소화해 내고 현대적으로 맛깔스럽게 재가공해버리는 그녀의 음악은 나무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했던 것은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환경을 이겨 내고 독립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고 마이 스페이스라는 신인류적 매체를 기반으로 유명세를 탔다는 점이었다. 평범한 외모라던가 파파라치가 반라의 사진을 게재해도 가슴 쯤이야 하고 웃고 넘겨버리는 털털함 역시 매력 포인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유명세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내놓는 싱글마다 전세계적으로 각종 차트에 상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심지어 두 번째 앨범은 플래티넘이 되었다. 뭐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 전부터 그녀가 넷상에서 구설수에 올랐다. 사건의 발단은 릴리가 자신의 마이 스페이스에 게재한 불법 음원에 대한 선전 포고글이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닉 메이슨과 레됴헤드의 에드 오브라이언이 “file sharing music is fine”라고 말했다는 글이 타임 지에 실렸나 본데 이에 대한 반대 성명글 같은 것이었다. 릴리의 글은 아주 논리 정연했다. 핑크 플로이드나 라됴헤드 같은 밴드야 돈도 벌 만큼 벌었고 무슨 베스트 앨범만 내도 금방 매진되어버리는 입장인데 인터넷 파이러시에 무슨 신경을 쓰겠냐는 것이었다. 자신과 같은 무명 신인은 소속 레이블과 최초 계약 시 노예 계약을 해야 하고 자신은 운이 좋아 이제 겨우 계약 시 진 빚을 갚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한 무명 신인 아티스트들은 아직도 빚에 허덕이고 있으니 제발 음반을 돈 주고 사라는 호소였다. 구구절절이 논리에 닿는 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몇몇 짓궂은 친구들이 그녀의 뒤를 캐서 반박하기 시작했다. 불우했다던 그녀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가 유명한 배우이자 그녀의 현 소속사인 EMI의 프로듀서인 키스 앨런이며 심지어는 부유한 자제만 다닌다는 사립 학교에서 수학했다는 사실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그녀가 소속되어 있다고 했던 독립 레이블 역시 EMI 산하의 이름만 다른 레이블이었다. 심지어 어떤 친구들은 릴리의 해당 글이 그녀가 썼다고 보기 어렵고 EMI의 사주를 받아서 쓴 글이거나 대리인에 의해 작성된 글일꺼라는 추측까지 했다. 안티 릴리꾼들은 그녀의 바탕 자체가 마이 스페이스를 통한 무료 음원 배포를 통한 밑에서부터의 지지 기반 형성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경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들의 주장은 인터넷 파일 다운로드는 신인들이 거대하고 조직적인 홍보 없이 자신의 음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로이자 도구라는 점에서 금지하면 되려 신인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참 속 시끄럽다. 착찹한 심정을 가다듬고 가만히 되돌아 보니 뭔가 그림이 좀 그려졌다. 누가 보더라도 릴리의 글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밝혀진 그녀의 뒷배경이라던가 그녀의 행보,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인디 레이블에서 내놓았다는 첫 앨범의 완성도를 되씹어 보고는 나 역시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디 레이블의 신인 아티스트가 첫 앨범부터 돈 냄새 풍기는 뮤직 비디오를 찍고 완성도가 기성 아티스트 뺨치는 음악을 내놓고 대형 콘서트를 조직할 때부터 “의심”했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거대 EMI가 처음부터 계획하고 만들어진 아티스트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말하자면 조휴일이나 레지나 스펙터의 거칠고 풋풋한 느낌이 결여된, 냄새가 구린 음악이었던 것이다. 거대 조직의 음모에 놀아난 게 아닐까 하는 배신감에 속이 쓰리다. 그렇다고 릴리에 대한 배신감은 아니다. 사실이야 어떻든 릴리 역시 피해자이며 여전히 누가 만들었던 릴리의 음악은 기분 좋은 음악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슬프다. 이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향유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예술에 다시 이성의 잣대를 갖다 대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대자본에 의해 조작된 미디어에 대한 개인적이고 극단적인 혐오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처음부터 대놓고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에 대한 지독한 혐오와 같은 혐오감 말이다. 시스템이 만들 수 있는 더 훌륭한 음악이 있음도 인정한다. 더 화려하고 정련된 음악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을 향유하고 행복해하는 대중도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음악이 아니다. 커트와 액슬의 거칠음, 조휴일의.. (이 색희는 정의하기 어렵군) , 조윤석의 진정성, 잭 존슨의 서정성, 제이슨 므라즈의 순박함, 레지나 스펙터의 풋풋함이 나의 음악이다.

슬프다. 예술을 대할 때 교활해져야 하는 것이. 교활한 여우가 덫에 걸릴 확률이 적은 만큼 먹이를 얻을 수 있는 확률 역시 적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재범
릴리의 사건과는 아주 다른, 달라도 너무 다른 양상으로 한국에서도 한 아티스트를 두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나 보다. 아티스트에 관한 사건일 뿐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인데다가 내 음악적 취향을 놓고 보자면 전혀 관심에도 없는 아티스트이지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할 듯 해 덧붙여 몇 자 적는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일련의 사건의 결말은 참혹하고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다. 1984의 윈스턴이 떠오를 정도이다.

우리 나라보다 못한 나라도 아아주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소위 말하는 선진국 물을 조금이라도 먹어본 사람이라면 대한 민국의 일상이 얼마나 답답하고 버티기에 녹녹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피라던가 애국심을 떼고 단순히 객관적으로 말했을 때의 얘기이다. 미쿸에서 어릴 때부터 살아온 이 친구의 입장이라면 얼마나 좆같겠는가. 안 봐도 비디오다. 진정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힘들어서 개인적 공간에다 불만을 토로한 혈기 넘치는 젊은 청년에게 “어유, 얼마나 힘들었니”하면서 등을 토닥거려 주면서 보듬어주었어야 했었다. 물론 일제와(오바인가?) 6.25, 서슬 퍼런 군사 정권을 거친 기성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국수적 공명심이나 그에 반하는 빨갱이 짓에 대한 편집증적인 결벽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 덕에 독립도 했고 6.25도 버텨냈지 않았겠나. 나도 지금의 이 나라를 물려주신 이 나라의 아버지들에게 감사한다.

하지만 정도의 문제이지 않나. 가정 형편 좆같다고 쌍욕을 퍼붓고 집을 나간 애새끼도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되는 법이다. 팔도를 뒤져서라도 찾아내서 뒷덜미를 잡고 패든지 달래든지 해서 포용해야 하는 거다. 너 따위 필요 없다고 내팽개치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렇게 내팽개친 애들이 부모 욕보이고 사회의 암이 되는 거다.

사적인 영역에 침범해 사사로운 의견 개진에까지 토를 다는 것도 모자라 중징계라니. 현대판 마녀 사냥이자 인민 재판이 아닌가. 미성숙도 모자라 미쳐 돌아가는 세상인게다. 애새끼 집 나가고 사고 치고 욕 좀 들어 먹어야 덜 된 아비도 정신 차리고 성숙하는 거다. 남자다운 사회라면(?) 사회가 내포하는 엄연한 문제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선진 사회를 경험하고 온 젊은 피의 욕이자 충고이기도 한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다같이 머리를 싸매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거였다.

쌍욕을 하든 입에 바른 말을 하든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입장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 그렇지만 가만 있다가는 윈스턴처럼 빅 브라더스의 눈을 피해 몰래 자신의 기록을 남겨야만 하는 날이 올 것만 같아 두려운 마음에 한가로운 연휴를 틈타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만- 몇 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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