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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tel aviv

by erggie 2009. 9. 11.

.텔 아비브다. 두 번째라고 제법 편안하다. 3일 동안 머나먼 타지에서까지 밤늦게 일하고 돈이 아까워 맥도날드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시는 찌질이 과장님을 보필하다가 과장님이 귀국한 이후부터는 푹 퍼져버려서 그야말로 이국의 정취에 흠씬 젖어버렸다. 잘생긴 미카엘(사무실엔 미카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만 넷이다)이 추천해준 펍을 찾아 나섰다가 한 시간 동안 좁은 골목을 헤맸다. 이국의 정취는 골목에서 가장 진하게 풍기는 법이다. 울퉁불퉁한 벽돌 바닥과 정돈되지 않은 보도의 마감부터 흥미롭다.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전쟁 영화에서나 보았던 유럽의 뒷골목의 어두침침한 조명 사이로 여인들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느린 걸음을 걷는다.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은 여인들의 옷차림이다. 워낙 육덕이 풍요롭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거의 모든 여인들의 빠숀이 과감하고 세련됐다. 반면에 남자들은 거의 꾸미지 않는다. 대머리가 유독 많고 골격이 튼튼한 편이며 배 나온 이들도 상당하다. 공장에서 자동차 수리하다 나온 것 같은 남정네들이 탈렌트 뺨치게 세련된 언니들을 끼고 다닌다. 하나같이 무리 지어 걸어가며 큰 소리로 얘기를 나눈다. 카페카페라는 아트 뮤지엄은 쇼핑 센터 같다. 입구에선 밝은 청년이 클래식 기타로 흥겨운 가락을 퉁기고 있었고 카페 건너편에 제법 잘 갖춘 무대에선 천 몇 조각만 걸친 무용수들이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열심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허겁지겁 뛰어들어가 싸고 나오는데(팬티에 조금 찔렀다) 열이 확 오른다. 도대체 이런 여유들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딜 가든 사람들의 표정은 늘어져 있다. 열을 내서 토론을 하던 행인들도 등을 두드리고 볼을 부비고 헤어진다. 시바 이 새끼들은 이러고 사는데 나는 왜 이러고 사나. 조까타서 증말. 여튼 한 시간 넘게 헤매고도 펍은 못 찾았지만 나름 즐거운 마실이었다.

.그만 지쳐서는 호텔 앞의 마이크’스라는 라이브 펍에 들어갔다. 페도라를 눌러쓴 존 레논 보컬 겸 기타리스트와 애덤 샌들러처럼 말끔하게 생긴 베이시스트, 헌팅캡을 눌러 쓴 잭 블랙 드러머로 이루어진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햄버거와 기네스를 주문하고 코큰 여자애와 쉐프라는 야릿,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친구와 인사를 나눴다. 60은 족히 넘은 아저씨가 구석에 앉아 혼자 조용히 맥주와 담배 연기를 즐기고 있었다. 33의 야릿은 여친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갔다가 심심해서 나왔다고 한다. 여친은 속이 안 좋아 집에 있기로 했다고. 머리가 훤칠하게 벗겨졌는데 시원하게 잘 생긴 친구다. 혼자 왔다고 하니까 금요일 저녁에 같이 클럽에 가자고 한다. 잘 생긴 남정네가 홀로 주말을 보내는 건 죄악이라나 뭐라나. 케챱이 덕지덕지 묻은 포크로 배때기를 쑤셔버리고 싶었다.

.그나저나 랍비 무리인지 밴드인지 구분이 힘든 이 친구들은 블루스부터 메탈리카까지 장르의 벽을 박살내버리는 가락에 흠뻑 취해서는 연주를 때리고 있었다. 존 레논은 와우를 밟는 짜세라던가 암을 댕기는 간격 같은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과연 아마추어일까 궁금하게 만들 정도였다. 잭 블랙 역시 드럼 교본에서는 절대 찾아 볼 수 없는 타이밍으로 박자를 쪼개고 있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스라엘 국기가 촐랑거리는 쬐그만 하이햇을 언제 두드릴까만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구석에서 홀로 맥주를 홀짝거리던 할배는 어느 새 길거리의 여인임에 여부가 없는 검은 피부의 여인과 무용담에 젖어 있었다. 검은 여인의 빨통은 탄력으로 터질 것만 같았고 허벅지는 너무 매끄러워서 흑진주를 갈아서 발라 놓은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는 새 담배 반 갑을 다 태우고 보통 기네스 두 잔과 바텐더 바비가 추천해준 샷이 추가된 폭탄기네스를 다 비우고 있었다. 바비는 왼쪽 어깨에 호랑이 호자의 약자를 써놓고 있어서 칭찬해 주었는데 쭝국인 손님이 와서 한 획이 모자란다고 말했다고 투덜거렸다. 존 레논이 장황한 히브루로 뭔가 주문 같은 것들을 읊조리고 있었다. 몸이 천 갈래로 찢어질 듯 피곤이 몰려왔다. 밴드를 위한 팁을 모으는 1리터짜리 글래스가 테이블을 돌 때 20쉐켈 한 장을 던져 놓고 일어섰다. 옆 자리에 언젠가부터 나타나 몸을 부벼대는 히스패닉의 풍요로운 허벅지가 자꾸 눈에 밟혀서 견디기 힘들었다.

.아침에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오른 팔뚝에 숫자로 문신이 새겨진 노인을 보았다. 80쯤 되어 보이는 노인의 휘고 가는 다리가 반바지 사이로 볼품없이 삐저 나와 있었다. 알렉스에게 아우슈비츠 출신이 아닌가라고 물어보았는데 아마 다른 캠프 출신일 거라고 했다. 아우슈비츠 출신 남자는 거의 생존자가 없다고 한다.

.지난 9월 1일이 2차 세계 대전 70주년이라고 한다. TV는 그날의 참상을 담은 영상으로 가득하다. 상처가 깊었던 탓일까. 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알렉스가 재밌는 얘기를 해주었다. 종전 직후 많은 독일 나치들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로 망명했다. 아돌프 에히만이라는 자 역시 그 중의 하나였는데 라인하드 하이드리히라는 작자와 유대인 대량 학살 계획을 선두 지휘한 자였다. 아돌프는 라인하드의 지휘 아래 유태인 게토 이주와 캠프 수용 및 대량 학살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실행한 책임자였다. 1960년, 이스라엘의 정보국이라 할 수 있는 모사드의 요원들이 아르헨티나에서 아돌프를 검거했다. 국제법을 통해 이스라엘로 송환되어 뒤늦은 전범 재판이 이루어졌고 사형 선고를 받아 1962년 사형당했다. 사형 제도가 없는 이스라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형 집행이었다고 한다.

.나는 위안부나 강제 징집과 같은 만행을 지휘한 일본군 전범이 누구라던가 재판을 받았다던가 어디 도망가 살아 남았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내 무지의 소치이며 우리 모두의 단체 건망 증후군의 결과이다.

.용서를 떠나 기억은 중요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의 날을 세우는 유대인들에 배워야 하겠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기억과 역사의 축적을 통해 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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