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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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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ggie 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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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공짜로 렌트해주는 바이크를 타고 출근했다. 잘 생긴 미하일이 함께해 주었다. 이 바이크라는 놈이 완전 언니들을 위한 바이크다. 미하일 바이크는 존내 좋은 MTB다. 기어도 없이 조낸 처밟아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시츄에이숀인데 이 시키는 봐주고 뭐고 없다. 내 킥의 삼분지 일 정도만 밟으면서 쪼개면서 앞서간다. 하루종일 땀 냄새 풀풀 풍기면서 일했다. 저녁엔 시원하다고 더 인정 사정 없이 밟아제껴서 호텔 돌아오니 하늘이 다 노랗다. 그래도 이 언니 자전거 딴에는 픽스드 기어인고로 픽시의 맛을 첨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몰랐는데 픽시라고 리버스 회전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페들이 정지된 상태는 그대로 바퀴의 회전이 유지가 되고 역방향으로 하중을 주면 기어가 고정되면서 브레이크가 먹는 거더군. 나름 픽시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게 하는 좋은 경험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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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고 하기엔 좀 규모가 작은 내를 따라 나 있는, 말하자면 천변 도로의 경치는 일품이다. 한강의 강변 자전거 도로에 뭔가 억지스러운 부자연감이 있다면 텔 아비브의 그것은 주변과의 조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매끄럽다. 유칼립투스와 낑깡 나무가 우거진 수풀을 지나면 갑자기 트인 공간 너머로 저수지가 나오고 굽이치는 길 간간히 목조 다리가 천을 가른다.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절묘한 위치에 노천 카페가 들어서 있고 자전거를 세워 놓고 나른한 음악을 들으며 음료를 즐기는 라이더들이 인사를 한다. 내에는 도무지 아마추어 용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은색 카약의 긴 노가 개구리밥으로 온톤 푸른 수면에 찰랑거리는 물결을 만든다. 야자수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앵무새가 짝을 짓고 저수지엔 오리가 노닌다. 날씨만 무덥지 않다면 최상의 자전거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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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휴가를 다녀 온 에러즈가 처음으로 얼굴을 보였다. 이런 저런 얘길 하다가 오리 얘기가 나왔다.
- 잔차타고 오다가 앵무새도 보고 오리도 봤어.
- 어 너도 오리 봤구나. 걔네들 마피아 두목이 길르던 애들이야.
- 구라치지마 새꺄.
- 진짜야 임마. 텔 아비브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마피아의 두목인데 그 자식이 매일 아침에 모이 주면서 기르던 오리들이야.
- 기르던?
- 어, 암살 당했어. 이젠 돌봐줄 사람 없는 불쌍한 애들이지.
- 구라도 참.
- 믿든지 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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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으면서 아낫 아줌마한테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 어, 그거 진짜야. 텔 아비브의 유명한 마피아 갱단 중의 한 두목인데 우리 집 근처에 살았어. 암살 전에도 여러 번 폭탄 테러 시도가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동네 집 값이 많이 떨어졌어. 암살 당일에는 뭔가 예감이 있었나 봐. 오페라 보고 돌아가던 길에 와이프에게 다른 차를 타고 가라고 얘기했데. 그리고 길 한 가운데에서 폭탄을 실은 차가 들이받았지. 불과 일년도 안 된 일이야.
흐미. 진짜였군. 이건 완전히 영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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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미친 듯이 업무에 집중하고 퇴근 길에 넋 놓고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 했다. 스키드 마크를 그으며 급제동한 운전자를 가볍게 째려봐 주고 신호등을 보니 빨간색이더군. 여긴 일차선 도로의 신호가 차선당 하나씩 반반 따로 점등된다. 시스템이 다른 나라에서 몸에 익은대로 움직였다간 비명횡사하기 십상이다. 이건 졸지에 클로저의 나탈리 포트만이 될 뻔하지 않았나. 간신히 사고를 피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보도에 올라서니 종아리에 화끈한 문때기를 바른 금발 처자와 히기덕거리고 있던 젊은 색희가 실실 쪼개면서 시부린다.
- 크레이지 오토. 크레이지~
금발 처자가 팔꿈치로 그러지 말라고 툭 친다.
시바 절세 미모의 쥬드 로가 나타나 도와주길 기대하는 나의 상상력을 충족시켜 주기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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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호텔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말라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노닥거리고 있다. 옆을 스치는데 한 색희가 ‘오갱끼데스까’ 한다. 나도 모르게 ‘빡큐! 애솔’이라고 고함쳤다. 내뱉고 나니까 꽤 머쓱해졌는데 내 신경이 꽤나 날카로워지긴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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