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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백대지

by erggie 2008. 12. 2.
친구가 결혼을 한다.

여느 한국의 젊은이처럼 이리저리 치여가며 힘든 20대를 보내고 32살에 첫 직장을 얻어 이제 결혼을 생각한다는 녀석을 만나 날이 새도록 술을 마시며 치열한 듯도 공허한 듯도 했던 젊은 시절을 얘기했다. 부모의 소개로 선을 봐 만났다는 그의 휘앙세는 **의 학교 선생이라고 한다. 녀석이 일하고 있는 곳과는 차로 4~5시간이 걸리는 거리이지만 직장을 포기할 수 없어 잠정적으로 주말 부부로 살아야 한단다. 둘 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듯 신혼집도 없이 처가집, 직원 기숙사를 왔다갔다 하며 신혼 생활을 꾸려나갈 작정이란다.

휘앙세의 학교는 **에서도 벽지에 위치한 ** 종고이다. 종고라 함은 종합 고등학교의 줄임말로 공부 손 놓은 애들이 마지 못해 들어가는, 속된 말로 따라지 학교다. 어릴 때부터 술과 담배, 이성 관계에 찌들어 사는 애늙은이들이 득실거리는 데다. 난 여자 선생이 그런 학교에서 살아남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천성적으로 입담이 좋은 그 친구의 장황한 일화들을 들을라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처음 연애할 당시 방파제 근처에서 몰래 데이트 하다가 스쿠터를 타고 놀러 나온 학생들한테 걸렸다고 한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다시 스쿠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더란다. 얼마 안 있어 나타난 녀석들의 손엔 방금 친 회가 가득 든 비밀 봉지와 소주가 들려져 있었다고.

잘 데가 만만치 않아 그 선생님 집에 자고 일어났는데-이 친구는 결혼 전까지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고 후에 고백했고, 난 병신이라고 구박했다- 상 위엔 또 다른 종류의 회가 접시가 넘치도록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준비해 준 거라 생각하고 고맙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남자 친구 기력 보강해야 한다고 아침에 들고 왔다고.

올해 졸업식엔 선생님 데리러 식장엘 갔었다고 한다. 시골 학교 특성 상 남학생 여학생을 불문하고 졸업식인지 고고장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차림들에 눈이 돌아갔다는 얘기는 반찬 정도라고 생각하고서라도 도시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많았다고. 식이 끝나기를 기다려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이 남자 친구와 있는 걸 보자 마자 꼭 한 잔 해야겠다고 기어이 술집으로 데리고 가더라고. 내 얕은 추측과는 정반대로 흥청망청 마시지도 않고 선생님과 있었던 추억들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결국엔 부둥켜 안고 울더라고. 고맙다고. 은혜 잊지 않겠다고. 대부분이 대학에 가지 못하고 부모의 생업을 이어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짓거나 도시에 나가 아르바이트로 전전해야 하는 내가 보기에 어둡기 그지 없는 미래를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불평보단 감사에 충만해 있더라고. 학생들이 감사의 뜻으로 권한 잔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취해버린 선생님이 걱정되어 술집 문밖까지 나와 고개 숙여 잘 들어가라고 인사를 하더라고. 내 친구에겐 선생님 잘 부탁드린다는 말도 있지 않더라고. 그렇게 입담 좋은 친구는 휘앙세 자랑을 했다.

그 휘앙세는 이제 학교를 옮겨 내 고향-그나마 도시-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데 이전 학교에서 느꼈던 정은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 친구의 휘앙세에 대한 사랑이, 내 시골에 대한 편애가 무의식적인 편집을 통해 이야기의 한쪽 면만 부각시켰을 수도 있지만 분명 내 친구의 이야기가 우리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내 이웃에게 짜증만 내는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이 황량한 도시에서 바라지 않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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