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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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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ggie 2007. 12. 25.
그러니까 새로 이사한 집에 필요한 것이 몇 가지 있어 마트에 갔다가 매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문득 낯선 이질감에 당혹스러워졌다. 저들 중 반 이상이 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게다. 과연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현기증이 났다. 나를 먹여살렸고 나를 가르쳤던 저 사회와 저 구성원들 중 너무나 많은 이들이 나와 너무나도 다른 생각과 다른 꿈으로 행복한 모습으로 쇼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어지럽게 만들었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내가 근본적으로 저 대다수들과 다른 사고와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당혹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유리가 해준 충고대로 내가 너무 나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게 아닌가.
왠만하면 정치적 견해는 가지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리 되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는데 눈과 귀를 막으려 노력해도 하수상한 시국은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다가 결국은 입을 열게 만드는구나. 그래서 여기 내가 우려하는 시국에 대해 몇가지 떠들어 보려 한다. 홀로 이끌어 낸 결론으로 수많은 논리적 비약이 있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1. 정계 뿐만 아니라 검창, 은행, 언론까지 쥐고 흔드는 거대 기업이 온 나라를 쥐고 흔드는 수작이 체계적으로 고착화되어 그야말로 제대로 통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의 하수인임에 분명한 는 그야말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줄테다. 그러나 그 기업에 중소 기업은 명함도 못 내밀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란 노동 지옥을 뜻한다.
2. 한국은 아무래도 미쿸이 앞장선 허울 좋은 세계화에 빠르게 종속될 것 같다.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개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부터 간섭하기 시작했는데 가 이에 대응하는 수작들을 볼라치면 앞으로도 미쿸의 개노릇을 할 게 뻔해 보인다. 고분고분 FTA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적어도 10년 안에 우리 사회를 지배할 존재는 한국의 모 거대 기업이 아니라 국적이 불분명한 초국적 거대 기업일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정경이 구질구질하게 밀착되어 있는 시스템은 초국적 기업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기에 최적의 환경임에 틀림이 없다.
3.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윤리적 불감증이 팽배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입에 풀칠하게 해준 독재와 탄압에 대한 찬양이 이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야망의 세월]의 풍운적 시나리오는 맹신하면서 백일하에 드러난 의 비리에는 눈과 귀를 열기 싫어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제발 큰 일을 위해서는 그 정도 비리쯤이야 하는 생각들은 아니었으면 정말 좋겠다.
4. 아무래도 앞으로 한반도는 쑥대밭이 될 것 같다. 가 서울에 해놓은 짓거리를 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례를 찾기 힘든 청계천 복원 사업. 유럽의 국가들과 일본은 기존의 하천 개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하나같이 하천을 자연의 형태로 복원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하고 있다. 도처에 문제를 안고 있는 하천을 단기간에 메꾸어 버릴 경우 초래될 재앙에 대해선 애써 떠들고 싶지 않다. 역시 감정적인 글이지만 다음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겉으로 휘황찬란한 청계천 어항변을 헤헤거리며 몰려드는 저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들이 저 무계획의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제 가 떠들어대고 있는 대운하는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개발 파쇼적 정책의 희생양으로 마구 칼질을 해버릴 한반도를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5. 벌써부터 지역 감정의 격화 기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22일 발표된 대구 경북 경제자유구역 선정은 그야말로 쑈가 아닌가. 선정의 배후에 어떤 더러운 연결고리가 있는지는 아는 바 없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악취가 코를 찌른다. 대경지역 주민들은 역시! 역시!를 외쳐대며 딴나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할 것이며 비 영남권 주민들은 가슴 속에 어린 한의 서슬을 벼릴 것을 생각하면 역시나 현기증이 난다. 선거 개표 결과가 한반도의 동서를 가르는 꼬라지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이런 선심 정책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뽑는 풍토를 더욱 더 먼 나라 얘기로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심 한 점 없이 총기 탈취범이 를 처리해주길 바랬고 뜻있는 투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주면 수원 지구대 행동대원 정도로라도 뛰쳐나갈 용의가 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이 시점에서 전쟁에 미쳐 광분하는 미국 사회와 싸웠던 스콧 니어링이 생각나는 건 오버일까? 사회에서 매장당할 때까지 자신이 믿었던 것을 위해 싸우던 그에 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헛소리뿐이라 속이 상해 미치겠다. 제길, 결국 일은 이렇게 되어버렸고 나는 거대 마트 매장을 메운 사람들 틈에서 현기증이나 느끼고 있다.
적게 쓰고 모아서 다국적 은행에 이자까지 퍼주는 지긋지긋한 빚 갚고, 이 수치스러원 권력의 하수인 자리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하고, 혹시 모를 쿠데타군에 대비해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끝으로 박노해 시인의 시 한편을 감상하도록 하자

하늘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검은 하늘이 짙게 드리운 판국에 우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인 그런 세상은 너무 멀어 보여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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