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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a sardine

by erggie 2009. 1. 21.

수족관에서 방금 건져올려진 정어리의 눈을 생각나게 하는 그 소녀는
내가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해 푸념을 하고
헝클어진 단발머리를 가다듬고 있었다.

나는 자꾸만 다른 사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데.
내 머리 속을 맴도는 그녀는 그 옛날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던 그녀는 눈같이 창백한 손목에 별 모양의 문신을 그어놓고 있었다.

왜 당신은 거기서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나요?
그렇게 별문신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정어리 눈은 아마도 오년 전쯤 비 오는 전화 부스 앞에서 헤어진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인데.
헤어질 때와 똑같은 냄새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냄새와 눈의 탁도 같은 것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가 한 약속들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똑같이 푸념을 하고 머리를 가다듬고 입술을 씹고 있었다.
나는 약속 같은 것들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허공을 부유하는 먼지들을 세면서 관타나모의 그녀를 떠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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